언감 생심

해서는 안되는 일이란게 있는데.
Tiv (티브) 님   이글루에서 트랙백했습니다.

다른 회사 재직시에 겪었던,꽤 햇수가 지난 얘긴데,예전에 했던 얘기니 기억나는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다.실제 이런 식으로 대놓고 네다바이(사기질)깐 인간을 면담한 적이 있었으니.

...
신입사원이란답시고 회사까지 와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온라인 온리로
입사원서를 받진 않았고 직접 내방해서 포트폴리오,이력서,자기소개서를 제출해서는
그자리에서 면담받는 일이 흔했음)
포트폴리오를 당당히 제출하는데 그걸 보고는
속에서 천불과 웃음이 동시에 터진 묘한 상황으로 표정 관리하느라 참으로 많이 애썼다.
그 지원자가 낸 포트폴리오가 무엇인가 즉슨.

-화이트앨범 내 주인공 유키양 스탠딩 CG
-피아캐롯 2 히노모리 아즈사 가을배경 엔딩장면
-일본 어느 동인의 홈페이지 그림 여러개
-자신이 그린건지 알수없는 출처 불명의 스케치 스캐닝들(그림체가 제각각이었음)
(뭐 일단 이게 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일본 게임중에 그래픽들을 퍼와서 자기것이라고 가져온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언제 구입한건지 알수없을 정도로 누렇게 뜬 스케치북


대략 이랬다는 말씀. 같이 본 다른 디자이너들/플그래머들 반응은
"오 잘그렸다 정말 프로인데" <- 이랬음. 물론 난 속에서 조까-_-ㅗ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그냥 실실 웃고 있었다. 그걸 본 속없는 어느 디자이너 동료 한마디
"왜임마 위기감 느껴?" <-뭐임마 내가 지금 웃는게 웃는게 아니여 아니라고.

..이해하기 힘든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국내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중에 동인계를 알고있고
모에를 즐기는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 회사라든지 팀 성격상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중에 동인지라는거 구입해본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200명중 10명이 될까말까일거다.
기업 ID로 게임잡에 들어가서 디자이너 지망생들 포트폴리오를 좌르륵 보면 정말 동인 구경이
상당히 힘들다. 100여개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는데 동방 그림 하나 못봤다(...)
그러니 디자이너 자신들이 못본 그림이라고 그냥 저 가져온 사람이 그린 것이려니 하고 속아
넘어가 버린 것이다. 게다가 jpg로 되어있는 결과물을 배경과 캐릭터 등을 서로 억지로 분리한뒤
조잡한 PSD파일로 만들어서 배경을 블러Blur 처리시켜 나름대로 속여넘이려는 치밀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훗 그러나 내가 그걸 알아채지 못할줄 알았냐? 십걸집 프로를 우습게 보지말거라.

일단 그 사기꾼은 사장 면담이란답시고 사장실로 들어갔고 난 그자리에서 재빨리 여기저기
웹을 뒤져서는 그가 가지고 온 그림의 출처 url과 HDD안에 있었던 동인그림 긁어모아 온것들을
리서치하였고 결국 대부분의 그림들의 원 출처를 정리하여 올가미를 쳤다.
그 뒤 면담에서 돌아오는데 실실 쪼개며 개발실에 들어오는걸 보니 입사 확정이라는 깃대를 꽂은 듯했다.
오냐, 순서대로 따지자면 일단 나도 같이 초면에 웃어주면서 분위기 좋게 이어가야겠지? 그러나
조금만 있으면 봐라.지옥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절감할테니 하고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일단 나는 팀원들에게 일단은 PC도 없으니 필요한 원화부터 테스트로 그리자는 제안을 했고
팀에서도 그래야겠지 하면서 일들을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원화가 이러저러한게 있으니 맡겼고.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니가 미츠미 미사토면 난 엘비스 프레슬리 요시타카 아마노 겠다.

이정도면 충분했기에 본격적인 심문에 들어갔다.
"제출한 포트폴리오하고 그림체가 틀리군요?"
"아 그건 예전 그림체고 이건 지금 그림체라 그렇습니다" <-그럼 그림체가 퇴보한거네?
"이것들은 다른곳에도 공개가 된것들입니까 아니면 이런 작품들을 본건 제가 처음 입니까?
이정도로 잘그린 그림이 있는 게임이 국내에 있었나 싶어서요"
"아뇨 개인 작품들입니다 공개된적이 없어요"
"그럼 이건(어느 동인 홈페이지에서 퍼온것을 가르키며) 언제 그린건지 설명 좀 해주시죠? 정확한 날짜가
어찌 되는지요?"
"올해 1월이었습니다. 그때 외주로 그렸거든요"
"확실합니까?(슬슬 분위기 험악하게 잡음)"
"...예..저..그"
"이거 설명 좀 해주시죠?(원본이 있는 사이트를 보여줬음) 이건 그보다 2년여 전에 올라간거라고
여기 업데이트 날짜 있죠?"
"...........뭔가 착오가"
"그리고 이건 또 뭐죠? (피아2 엔딩 그림과 그녀석이 가져온 그림을 포샵에서 레이어를 포개보임.
결과는 한 도트도 안틀리게 나옴..) 어떻게 다른곳에 공개된 적이 없다는 그림을 안면도 없는 제가,
그것도 도트 하나도 차이 안나는 원본으로 가지고 있을수가 있죠?"
"아 그게..착각했습니다 외주였습니다"
"이력서에도 없는 근거만 요령부득으로 계속 대는데 지금 저하고 장난까자는 겁니까?"
"....."
"이것도.(화이트앨범 게임 내의 유키양 스탠딩 CG들을 좌르륵 보여주며)오리지널 캐릭터라고 하는데
왜 저는 당신이 가져오지 않은 것들까지 가지고 있는 겁니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십니까!"
".........."


"대기하시죠." 이러고 사장실로 들어가서는 자초지종을 설명. 게거품 무는 사장.
그는 다음날부터 자취를 감췄다는 얘기라는.
아아. 가만 놔둘소냐? 당장 다른 회사에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연락을 해서는 이러이러한 녀석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정보와 주의를 알려주었고 후일,다행히 내 연락망이 닿은 각 게임회사에 그
사기꾼을 채용한 곳은 없다는 결과로 겨우 열을 식힐 수가 있었다.

...이자리를 빌어서 얘기하자면
디자이너,아니 게임 개발자를 꿈꾸거나 이직을 준비중인 모든 관련 지망생들은 절대 이런 일은
꿈도 꾸지말고 생각도 하지 말기 바란다. 예전에는 이정도만 하는걸로 끝내고 말았지만 지금은
사기+업무방해 기타등등으로 형사처벌에 이를수도 있는 법적인 책임까지 엄중하게 물며,
한층 더 조밀해진 개발자 끼리의 연락망으로 평생 이 업계 문도 못 두들기는 불상사가 절대로
발생할 것임을 알아 두기 바란다.설령 운이 극도로 좋아서 입사를 했다해도 후일 은폐한 사실이
밝혀지면 당장 해고 조치가 됨은 물론 그 처벌의 수위 또한 다르지 않다.

다행인 것은 그런 개 사기꾼은 아직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만
그러나 개발자가 웹에 올라가 있는 전세계 모든 그림들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누군가 맘만
먹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상황이기도 하다.드물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지금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사건이기에 노파심이 안 생길수가 있겠는가. 게임 좀 해봤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척 하고 알 만한 게임회사들에서도 종종 속았다는 사건이 빈번하게 개발자들 사이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기에.

게임학원이 마치 무슨 입시학원처럼 어느대학교 무슨학과 입학 몇명 누구누구 이런 대자보를 건물에
붙이듯이 입사합격자학원생 이름과 회사명을 건물에 대놓고 걸어 광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정도로 치열한 입시 아니 입사 경쟁이라면 마치 예체능계 대학 입시 비리같은 일이 안생긴다는
보장을 감히 하지 못할 지경이다.

p.s / 중국쪽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중국 게임업계에선 정말 흔한 일이라더라..(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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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폴 도둑 2008/09/22 21:31 #

    언감 생심윈비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실제로 저도 저런 일을 두 번 겪었는데, 한번은 거의 10여년전, 아직 그래픽 외주라는 것이 흔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저는 'J' 사에서 그래픽 팀장으로 일하고 있었죠.그런데 특이하게 그래픽 외주 전문회사라고 명함을 들고 오는 영업사원이 있더군요.관심이 있어 만나봤습니다. 그리고 그 외주 회사라는 곳의 포트폴리오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의 경력을 가지고 왔는데, 그 경력자 총 6명중에 두 명이 내가 작업했던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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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틸더마크 2008/09/22 19:37 # 답글

    우와 저런 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니 정말 충격과 공포네요. -_-;

    왜 저렇게들 사는지 원...저렇게 입사했다 쳐도 금새 뽀롱날 짓을...-_-
  • winbee 2008/09/26 00:41 #

    어딜가도 극소수의 또라이는 있게 마련이죠 뭐..
  • 레이 2008/09/22 19:49 # 답글

    '언제까지 그렇게 살텐가!'라는 옛날 유행어가 떠오르네요.
  • winbee 2008/09/26 00:42 #

    평생 그러고 살지도 모르죠.
  • 홍월영 2008/09/22 22:02 # 답글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에피소드인데 그게 윈비님이었군요.
  • winbee 2008/09/26 00:43 #

    하이텔 대화방에서 했던 얘기였는데..그때 대화방에 계신듯하네요;;
  • Janet 2008/09/22 22:48 # 답글

    재미있게 읽고 있다가 마지막에 붙은 XX현장 증거자료 본 순간부터 머리 속이 하얘졌습니다. ^^;
  • winbee 2008/09/26 00:43 #

    선생님 무엇을 상상하셨나요 (힛힛..)
  • 에리카 2008/09/22 23:21 # 삭제 답글

    엄청나네요.
  • winbee 2008/09/26 00:43 #

    돌아버릴정도죠.
  • 南無 2008/09/23 02:00 # 답글

    이전에도 이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납니다. 현실이란 웃을 수 없는 이야기로군요.
  • winbee 2008/09/26 00:44 #

    그래서 웃는게 웃는게 아니었죠. 실제로 닥쳤을때..
  • .cat 2008/09/23 12:49 # 삭제 답글

    나름대로 능력자(........)로군요.
    그정도 배짱이면 언제 한번 크게 해먹을 듯.....이 아니고;;;
    실무 볼 능력이 있으면 자기 그림을 가져오면 되지 왜 저런 짓을 하는건지 원;;;
  • winbee 2008/09/26 00:46 #

    "천재란 말은 미켈란젤로나 모짜르트에게 어울리는 말이라고" (by Band of brothers)
    과연 여기보다 더 크게 해먹는다면 어떻게 될까나요..;
  • kazu 2008/09/29 12:42 # 답글

    전 직접 경험한 사기꾼이 지금까지 두번이군요.
  • winbee 2008/09/29 13:10 #

    여기저기 제보가 점점 쌓이는군요(...)
    그나저나 이젠 써플만 동인지를 판매하신다고요..기대하겠습니다 =)
  • 영나미 2008/10/01 13:19 # 삭제 답글

    ㅎㅎㅎ;;; 대단한 철판이군요 저런 것도 가능하다니 ㅎㅎㅎ
  • winbee 2008/10/03 13:06 #

    세상 별녀석 다 있게 마련이니 그렇겠죠 뭐...-_-;
  • 로리 2008/10/04 15:11 # 답글

    저런 일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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